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
「역로」(1947)는 해방 직후 친일 행적이 있는 주인공 김창묵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겪는 내적, 외적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역로(逆路)'라는 제목은 '거꾸로 가는 길' 또는 '역행하는 길'이라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에 협력했던 지식인이 해방 이후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지를 보여준다 .
이 소설이 발표된 1947년은 해방 직후 한국 사회가 극심한 이념 갈등과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일제 잔재 청산과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과제 속에서, 과거 친일 행적이 있는 이들의 처우 문제는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채만식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김창묵이라는 인물을 통해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탐색한다 .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한국 근현대 문학의 핵심 작가 중 한 명이다. 전라북도 옥구(지금의 군산시)에서 태어난 그는 식민지 시대와 해방 직후의 혼란기를 살아가며,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으로 그려냈다. 1924년 「게으른 순이」로 등단한 이후,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꺼삐딴 리」 등의 작품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과 대중의 모습을, 때로는 조소와 비판으로, 때로는 연민과 공감으로 담아냈다 .
일제 말기에는 창작활동이 거의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 「민족의 죄인」, 「역로」, 「허생전」 등을 발표하며 다시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납북되어, 그해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은 마치 20세기 한국의 격동적 역사를 압축해 놓은 듯하다. 식민지, 해방, 이념 대립, 전쟁 - 이 모든 비극적 굴곡이 한 작가의 생애에 새겨져 있다 .
채만식의 문학은 크게 식민지 시대의 풍자 소설과 해방 이후의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일제 치하 조선 사회의 기형적 모습을 해학과 조소로 그려냈다면, 후자는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열, 그리고 새로운 모순을 더 직접적이고 무거운 톤으로 담아냈다. 「역로」는 바로 이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